초록 칠판
상담은 얼마나 하면 되나요?
이 질문도 연구소의 문턱 앞에서 상담을 고려하는 분들이 많이 하는 질문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정직한 답은 "내담자분의 상태에 따라서 기간은 달라진다."는 것일텐데,
이것이 실제로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답변을 시도해 보곤 합니다.
그래서 "한 6개월 정도"라는 대답을 하곤 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금 문의를 하는 분께는 어떻게 들릴까?
내과나 치과 치료를 하러 병원에 갈 때 제 자신이 어떤 심정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병원에 오려면 따로 시간을 내야 하므로,
저는 가능하면 최소한의 방문으로 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내과에서는 한번 타온 3일치의 약을 다 먹고 그 다음에는 안갔으면 하고,
3번에 걸친 치과의 신경치료를 2번에 해줄 수 없을지를 묻곤 합니다.
그러한 제가 내담자분께는
"일주일에 한번씩 6개월동안, 그러니까 적어도 24번을 오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단한 자기모순이며, 자신에 대한 기준과 타인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고 비난받을만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제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상담의 기간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우리 연구소의 방문자를 위해
"한 6개월 정도"라는 대답을 초록 칠판의 공간을 빌어서 해명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대답은 사실은 경험적인 답변입니다.
과거에 저와 함께 상담했던 많은 분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상담 작업을 하고 계신 내담자분들은 대부분 6개월 이상의 기간동안 저를 만나왔습니다.
그중에는 1년 이상을 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러니 6개월은 꾸밈없이 현실적인 답변인 셈입니다.
저의 말을 믿는다면, 궁금해지실 것 같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할까? ",
"서너번 정도 만나면 할 이야기도 떨어지고, 지루해질텐데...."
이러한 우려섞인 예상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상담의 실체는 많이 다릅니다.
할 이야기는 끊이지 않으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오곤 합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내 안에 있던 무엇으로 바깥으로 내보는 '소비' 활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에서의 이야기하기는 소비 뿐만 아니라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생산' 활동을 포함합니다.
알기는 했으나 어렴풋이만 느끼던 무엇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고, 말로 설명할수 있게 되며,
전혀 몰랐던 나의 측면에 대해 내 스스로 이야기하게 되는 창조적인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같은 이야기하기이되 수다가 주로 소비적이라면,
상담은 소비에 더해서 생산의 요소를 갖추려 합니다.
아마 써버리는 대화를 나누었다면,
상담의 기간에 대한 저의 대답은 "한달이면 충분합니다."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루하지 않습니다.
상담실이 비록 2~3평짜리의 작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내담자분의 종적이고, 횡적인 인생이 압축되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점잖은 말로 조리있게 대화를 나누지만,
내담자분의 중요한 인생 문제는 상담 선생을 대상으로 재연되기도 합니다.
케이블 TV에서 오래된 영화를 다시 틀어주듯이,
내담자분이 과거에 겪었던 어떤 문제가 상담실에서 재방송됩니다.
이 순간이 양측에게 편하게만 다가오지는 않지만,
대신에 상담실에 있는 두 사람은 지루해할 틈이 없습니다.
적어도 이런 순간은 격류 위에서 래프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고,
우리의 6개월은 어느새 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격류타기는 치료를 위한 찬스로서
이를 잘 겪어내면, 내담자분이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전과는 다르게 행동하려고 시도하는 등의 치료적 변화를 경험하곤 합니다.)
대화를 통해 생산이 이뤄지고,
간혹 휴가온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 둘은 격류 타기를 한다는 것이
반년짜리 상담의 이유로 납득이 되시는지요?
아마 저라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상담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가 생각하건대 그 이유는
한회, 한회의 상담에서 내담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을 경험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익과 손실의 대차대조표가 있고,
그 균형이 이익 쪽으로 기울 때 어떤 행동을 선택하곤 합니다.
따라서 내담자분들이 6개월의 긴 기간동안 상담을 꼬박꼬박 받으셨다면,
매번은 아닐지라도 대다수의 상담 회기에서
자신의 마음에 좋은 무엇을 찾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짐작이 아전인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해야 될 일은
매번의 상담이 마음에 좋은 무엇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0분의 시간동안 이뤄질 수 있는 작업은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한계내에서 증상의 호전과 성격의 성숙을 위한
작은 진전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손에 잡히는 성과를 안겨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전체적인 상담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한도 내에서 매번의 상담 회기는 얻고 깨닫는
새로운 학습의 측면을 '소박하게'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매번의 상담이 하나의 완료된 상담으로서 자기 충족성을 갖는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만 뚝 떼어놓고 봐도 상담이고,
6개월의 연속적인 상담속에 끼워넣고 봐도 상담이 될수 있습니다.
거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소소하고 수수한 어떤 배움의 요소의 갖춘 상담을 상담자와 내담자가 협력하면서 할 수 있다면,
그 때 기간은 이미 상관없는 고려사항이 되게 됩니다.
연구소의 문턱에서 상담을 고려하고 있는 어떤 분에게
상담의 기간에 대해서 좀더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한 6개월"이라는 종전의 답을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습니다:
"매번의 상담이 자신에 대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소박하게라도 매번 완료된 상담을 할 수 있다면,
기간은 단 한번이든 6개월이든 1년이든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 황 성 훈
아마도 정직한 답은 "내담자분의 상태에 따라서 기간은 달라진다."는 것일텐데,
이것이 실제로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답변을 시도해 보곤 합니다.
그래서 "한 6개월 정도"라는 대답을 하곤 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금 문의를 하는 분께는 어떻게 들릴까?
내과나 치과 치료를 하러 병원에 갈 때 제 자신이 어떤 심정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병원에 오려면 따로 시간을 내야 하므로,
저는 가능하면 최소한의 방문으로 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내과에서는 한번 타온 3일치의 약을 다 먹고 그 다음에는 안갔으면 하고,
3번에 걸친 치과의 신경치료를 2번에 해줄 수 없을지를 묻곤 합니다.
그러한 제가 내담자분께는
"일주일에 한번씩 6개월동안, 그러니까 적어도 24번을 오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단한 자기모순이며, 자신에 대한 기준과 타인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고 비난받을만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제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상담의 기간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우리 연구소의 방문자를 위해
"한 6개월 정도"라는 대답을 초록 칠판의 공간을 빌어서 해명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대답은 사실은 경험적인 답변입니다.
과거에 저와 함께 상담했던 많은 분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상담 작업을 하고 계신 내담자분들은 대부분 6개월 이상의 기간동안 저를 만나왔습니다.
그중에는 1년 이상을 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러니 6개월은 꾸밈없이 현실적인 답변인 셈입니다.
저의 말을 믿는다면, 궁금해지실 것 같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할까? ",
"서너번 정도 만나면 할 이야기도 떨어지고, 지루해질텐데...."
이러한 우려섞인 예상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상담의 실체는 많이 다릅니다.
할 이야기는 끊이지 않으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오곤 합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내 안에 있던 무엇으로 바깥으로 내보는 '소비' 활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에서의 이야기하기는 소비 뿐만 아니라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생산' 활동을 포함합니다.
알기는 했으나 어렴풋이만 느끼던 무엇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고, 말로 설명할수 있게 되며,
전혀 몰랐던 나의 측면에 대해 내 스스로 이야기하게 되는 창조적인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같은 이야기하기이되 수다가 주로 소비적이라면,
상담은 소비에 더해서 생산의 요소를 갖추려 합니다.
아마 써버리는 대화를 나누었다면,
상담의 기간에 대한 저의 대답은 "한달이면 충분합니다."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루하지 않습니다.
상담실이 비록 2~3평짜리의 작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내담자분의 종적이고, 횡적인 인생이 압축되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점잖은 말로 조리있게 대화를 나누지만,
내담자분의 중요한 인생 문제는 상담 선생을 대상으로 재연되기도 합니다.
케이블 TV에서 오래된 영화를 다시 틀어주듯이,
내담자분이 과거에 겪었던 어떤 문제가 상담실에서 재방송됩니다.
이 순간이 양측에게 편하게만 다가오지는 않지만,
대신에 상담실에 있는 두 사람은 지루해할 틈이 없습니다.
적어도 이런 순간은 격류 위에서 래프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고,
우리의 6개월은 어느새 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격류타기는 치료를 위한 찬스로서
이를 잘 겪어내면, 내담자분이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전과는 다르게 행동하려고 시도하는 등의 치료적 변화를 경험하곤 합니다.)
대화를 통해 생산이 이뤄지고,
간혹 휴가온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 둘은 격류 타기를 한다는 것이
반년짜리 상담의 이유로 납득이 되시는지요?
아마 저라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상담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가 생각하건대 그 이유는
한회, 한회의 상담에서 내담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을 경험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익과 손실의 대차대조표가 있고,
그 균형이 이익 쪽으로 기울 때 어떤 행동을 선택하곤 합니다.
따라서 내담자분들이 6개월의 긴 기간동안 상담을 꼬박꼬박 받으셨다면,
매번은 아닐지라도 대다수의 상담 회기에서
자신의 마음에 좋은 무엇을 찾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짐작이 아전인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해야 될 일은
매번의 상담이 마음에 좋은 무엇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0분의 시간동안 이뤄질 수 있는 작업은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한계내에서 증상의 호전과 성격의 성숙을 위한
작은 진전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손에 잡히는 성과를 안겨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전체적인 상담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한도 내에서 매번의 상담 회기는 얻고 깨닫는
새로운 학습의 측면을 '소박하게'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매번의 상담이 하나의 완료된 상담으로서 자기 충족성을 갖는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만 뚝 떼어놓고 봐도 상담이고,
6개월의 연속적인 상담속에 끼워넣고 봐도 상담이 될수 있습니다.
거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소소하고 수수한 어떤 배움의 요소의 갖춘 상담을 상담자와 내담자가 협력하면서 할 수 있다면,
그 때 기간은 이미 상관없는 고려사항이 되게 됩니다.
연구소의 문턱에서 상담을 고려하고 있는 어떤 분에게
상담의 기간에 대해서 좀더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한 6개월"이라는 종전의 답을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습니다:
"매번의 상담이 자신에 대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소박하게라도 매번 완료된 상담을 할 수 있다면,
기간은 단 한번이든 6개월이든 1년이든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 황 성 훈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